아시아 여성미술의 수정 가능성과 상호 참조:《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과 《메아리: 그녀들의 세기》를 보고

본 글은 두 개의 전시,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이하 《접속하는 몸》)과 2026년 상하이 롱뮤지엄(龙美术馆)에서 개최된 《메아리: 그녀들의 세기(回响:她们的世纪)》(이하 《메아리》)를 비교하여 아시아 여성미술의 수정 가능성과 상호 참조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접속하는 몸》은 신체성을 중심으로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여성미술의 동시대적 의미를 재검토한 전시이며, 《메아리》는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녀들의 백년 예술사’(‘她们’的百年艺术史)를 서술하고자 한 전시이다. 두 전시가 아시아에 위치한 한국과 중국이 여성 미술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봤는지, 기존의 여성미술 서술에서 어떤 결핍을 보완하고자 했는지 들여다 보고자한다. 또한 국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이 여성미술을 서술하는 방식의 차이를 함께 살핀다. 두 전시를 서로의 참조점으로 삼는 것은 한국과 중국의 경험을 하나의 아시아적 공통성으로 묶기 위함이 아니라 각국의 상이한 근대화의 경로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여성미술을 어떻게 형성해 왔는지를 함께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즉 두 전시의 유사성과 차이를 살핀 뒤, 이를 바탕으로 개별 전시와 국가 단위의 서술을 넘어 아시아 여성미술 복수의 실천을 상호 참조하며 읽을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시아, 이해 가능한 차이의 관계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의 의미를 짚자면 아시아는 흔히 서구의 바깥으로 호명되거나, 서구에서 형성된 이론이 적용되는 경험적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쑨거(孫歌)가 말하는 아시아적 사유는 서구와 구별되는 고유한 언어를 발명하거나 서구 중심을 아시아 중심으로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 쑨거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통해 그 사유를 설명하는데, 보편성은 특수성을 일반화하는 기준이 아니라 “서로 복제하거나 이식할 수 없”는 특수성 사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차이’, 곧 유사성을 발견하게 하는 매개이다.1 이를 바탕으로, 두 전시를 단일한 기준으로 분석하기보다 여성미술가의 작업과 여성미술의 역사를 재서술하려는 시도에서 이해 가능한 차이를 발견하고, 아시아성을 서로의 경험을 비추며 그 안의 차이에 접근하게 하는 관계적 틀로 본다. 이 글은 이러한 유사성을 출발점으로 삼아 각자의 특수성을 개방하고 각 전시에서 제시한 질문을 바탕으로 다른 전시의 서술 방식을 다시 읽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접속하는 몸》을 국가의 경계를 넘어 아시아 현대미술을 비교·연구해 온 아시아 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했다. 《접속하는 몸》이 아시아 여성미술을 하나의 계보로 확정하기보다 다층적 연결과 교차를 제안한다면, 롱뮤지엄은 사립 미술관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여성미술의 백년사를 구성한다.  

미술관의 여성미술가들

《접속하는 몸》은 아시아 여성미술가의 신체성을 매개로 전개되며, 《메아리》는 전 세계 여성미술의 백년사를 구성한다. 배명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접속하는 몸》을 신체성의 관점에서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주요 여성미술가들의 작품을 조망하는 전시로 설명한다. 여기서 신체는 이데올로기와 구체적 삶이 교차하는 장소이자 차이와 다양성에 기반한 존재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장소로 이해된다. 이러한 관점은 신체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정치적 장소로 보았던 서구 페미니즘 미술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지만 해당 전시는 신체성을 아시아의 식민주의와 냉전, 전쟁과 이주, 국가와 가부장제의 복합적인 역사 속에 재배치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접속하는 몸》은 아시아 여성미술가를 내세우며 기존 페미니즘 미술의 신체 개념을 확장하고 재맥락화한다. 그러나 그 차이가 ‘신체 정치’라는 기존 문법 자체를 수정하기보다 이미 승인된 페미니즘의 둘레에서 수용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접속하는 몸》은 ‘삶을 안무하라’, ‘섹슈얼리티의 유연한 영토’, ‘신체·(여)신·우주론’, ‘거리 퍼포먼스’, ‘반복의 몸짓’, ‘되기로서의 몸’이라는 여섯 장으로 구성되는 데 국가별 미술사를 나열하는 식이 아니라 젠더, 신화적 상상력, 도시의 일상과 비인간적 관계를 가로지르며 신체를 고정된 정체성이 아닌, 교차하고 변화하는 장소로 제시했다.

 《메아리》는 롱뮤지엄 관장 왕웨이(王薇)의 개인적 경험과 소장 활동에서 출발한다. 왕웨이는 2016년  《그녀들: 국제 여성예술 특별전(她们:国际女性艺术特展)》  (이하,《그녀들》)를 개최한 이후 약 10년에 걸쳐 더 많은 여성미술가를 발견하고 작품을 수집했으며, 그 축적을 바탕으로 2026년 《메아리》를 선보였다.2 왕웨이는 《그녀들》의 출발점이 “한 여성으로서 겪은 역할의 변화”에 있었다고 밝힌다. 3그 연장선에 있는 《메아리》는 여성 관장이 자신의 생애 경험과 컬렉션을 토대로 여성 미술가의 존재와 성취를 공적인 역사로 제시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전시로 볼 수 있다.  《메아리》는 롱뮤지엄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여성미술의 백년사를 구성하고자 했다. “비선형적 큐레이팅 전략(非线性策展策略)”을 통해 서로 다른 시대와 국적의 작가들을 병치하면서, 특정한 주제보다 개별 작가의 이력과 작품을 역사 서술의 단위로 삼는다.  4

선별과 수집에 관하여 

하지만 전시에서 개인 컬렉션을 세계 여성 미술사로 제안하지만 수집을 가능하게 한 시장과 자본의 조건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특정 개인의 수집이 역사적 대표성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개인 컬렉션을 중심으로 구성된 역사는 자칫 ‘소장 가능한 것들의 역사’가 될 수 있다. 이때 시장에서 이미 인정받은 작가와 작품이 역사적 대표성을 획득하면서 시장 가치와 미술사적 가치가 서로를 강화할 수 있다.  때문에, 《메아리》에서는 사적 자본에 기반한 특정한 수집 경험이 어떻게 보편적 역사로 확장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택이 어떤 배제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다른 계보를 제안할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는지에 따라 대안적 서술로 출발했더라도 기존 제도 안에서 승인되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 굳어질 수 있다. 《접속하는 몸》은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기획 주체를 분명히 드러내지만, 한국의 국립미술관이 아시아 각 지역의 작품과 담론을 선별하고 번역하는 위치 자체를 전시의 주요한 문제로 전면화하지는 않았다. 공적 대표성을 지닌 국립미술관은 특정한 입장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를 요구받지만 이러한 중립성은 전시를 구성하는 선별과 배제의 권한까지 덮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두 미술관이 여성미술을 대표하고 역사화할 권위를 구성하는 방식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 국립미술관은 제도적 지위와 공적 대표성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는 반면, 사립미술관은 컬렉션의 축적과 역사화를 통해 권위를 획득한다.

아시아 각국의 미술가와 작품은 한국의 국립미술관에 의해 선별되고, 도록은 한국어와 영어를 통해 번역·유통된다는 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중립적 매개자라기보다 아시아 여성미술가들의 차이를 조직하고 제시할 권한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가진 위치에 놓인다. 반면, 《메아리》가 중국이나 아시아 여성미술의 특수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사립미술관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세계 여성미술가를 한 세기의 역사 안에 배열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를 단편적으로 보면 서구권에서 서술해 온 여성 미술사의 중심을 상대화하고, 비서구권의 위치에서 여성 미술사를 다시 서술하려는 가능성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국립미술관의 소장품 역시 선별의 결과이지만, 사립미술관의 컬렉션은 상대적으로 개인 수집가의 취향과 자본, 시장에서의 구매 가능성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전시를 통해 미술사적 권위까지 획득할 때 여성 미술가들의 실천은 특정한 수집 기준과 시장의 논리에 따라 선별되고 정전화될 가능성이 있다. 

‘자기’와 개별 실천

 그렇다면 두 전시가 강조한 개별 미술가의 경험과 실천은, 전시가 마련한 역사 서술의 틀을 되묻고 수정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앞서《메아리》의 전신인 《그녀들》 또한 ‘자기 소멸’, ‘자기 해방’, ‘자기 성찰’, ‘자기 표현’이’라는 네 장을 통해 여성이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서술했다.5 《메아리》 를 포함하여 중국 미술 현장에서 거대한 역사적 서사보다 개별 실천에서 출발해 미술사를 다시 읽으려는 시도를 엿볼 수 있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동시대 미술의 시장화와 제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안적·자기 조직적 실천까지 새로운 미술계의 경향으로 부각되는 가운데, 류딩(刘鼎), 루잉화(卢迎华), 수웨이(苏伟)는 미술 실천이 시장과 제도, 미디어의 가치 체계와 스펙터클에 포섭되는 양상을 재검토하고자 Little Movements: Self-practice in Contemporary Art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들은 기존 미술 시스템의 위계에 포섭되지 않는 개별 실천에 주목하며, 작가뿐 아니라 큐레이터·출판·교육 등 다양한 활동의 주체를, 미술사를 구성하는 ‘자기 실천’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6 《접속하는 몸》 역시 아시아 여성미술을 동일한 집합체로 보지 않았으며, 부제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을 통해 개별 여성 미술가들을 직접적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한국에서도 개인의 경험을 이론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논의가 나타났는데 2023년 서울시립미술관 세미나 〈자기이론: 페미니스트적 자기-발명〉은 기존 이론과 실천에서 배제되어온 ‘나’의 경험과 일상을 새로운 이론과 실천의 출발점으로 삼는 ‘자기 이론’을 소개했다. 7자기실천과 자기이론은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고 소개되었지만 개인을 이미 마련된 역사나 이론의 사례로 편입시키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실천에서 출발해 기존의 미술사와 중심을 해체하고 다시 묻는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개별 여성 미술가의 생애와 경험은 기존 역사에서 누락된 존재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과 중국의 상황에 맞는 여성미술의 개념과 서술 방식을 고민하게 한다. 이는 자기의 경험에서 출발해 여성미술의 범위를 다시 묻고, 기존의 개념과 서술을 수정하는 출발점이 된다.

상호 참조하며 수정하기, 다시 쓰기
이 글은 두 전시가 여성 미술가를 주목하며 기존 미술사를 다시 쓰려고 한다는 유사성에서 출발해,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배경과 제도적 위치, 자기를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접속하는 몸》에서는 아시아 여성 미술가를 선별하고 번역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 안에서 성찰되고 있는지를, 《메아리》에서는 수집을 가능하게 한 제도와 자본의 조건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질문할 수 있었다. 자기이론이 ‘나’의 경험을 통해 기존 이론을 수정하는 실천이라면 이러한 방법은 아시아를 이해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아시아 역시 공통점으로 묶기보다 개별 경험에서부터 이해될 필요가 있다. 두 전시는 이러한 의미에서 서로의 차이를 비추는 참조점이 될 수 있었다. 《접속하는 몸》은 《메아리》의 개인 중심 서술을 제도와 권력의 문제로 확장해 읽게 하고, 《메아리》는 《접속하는 몸》이 제시한 신체라는 공통 언어를 개별 삶과 작업의 차이 속에서 다시 구체화하게 한다. 또한, 전시가 국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이라는 제도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기에 《접속하는 몸》에서는 선별과 번역을 수행하는 국립미술관의 위치를, 《메아리》에서는 사적 컬렉션이 역사적 권위로 전환되는 과정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전시를 상호 참조하는 의미는 하나의 아시아 여성 미술사를 확정하는 데 있지 않고, 서로 다른 주제와 제도적 조건이 상대의 전제를 드러내며 기존의 역사 서술을 계속 수정하게 하는 데 있다.

  1. 쑨거는 “간단히 말해서 두가지 특수성은 만났을 때 서로 복제하거나 이식할 수 없고 그들 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속한 특별한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러한 상황에서 보편성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시 말해 이해할 수 있는 차이를 통해 우리는 특수성의 영역에 들어가려고 노력합니다.”라고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하기』(p.23)에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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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녀들: 국제 여성예술 특별전(她们:国际女性艺术特展)》는 롱뮤지엄 웨스트번드에서 열렸으며, 13개국가와 지역의 여성 작가  여성 작가 104~105명,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참여 작가에는 중국의 판위량·위훙·샹징·차오페이뿐 아니라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와 오노 요코, 미국의 루이스 부르주아·키키 스미스·조안 미첼, 영국의 트레이시 에민·제니 사빌, 세르비아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브라질의 베아트리스 밀라제스, 남아공의 마를렌 뒤마 등이 포함되었다. https://www.westbund.com/en/index/EVENTS/detail_26ey7O.html?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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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王薇, 「LONG展览 | 回响:她们的世纪——全球女性艺术特展」, 《澎湃新闻》, 2026.2.27, https://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32662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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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LONG直播 | 3月14日晚,听罗依尔讲述百年女性艺术史」, 『澎湃新闻』, 2026.3.13, https://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3275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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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龙美术馆, 「她们:国际女性艺术特展」, 龙美术馆, 2016, http://www.thelongmuseum.org/exhibition-369/13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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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Museion, “Little Movements II: Self-practice in Contemporary Art,” curated by Liu Ding and Carol Yinghua Lu, June 29–November 3, 2013. 2011년 선전 OCAT의 《Little Movements》를 확장한 전시로, 기존 미술 시스템의 위계와 가치 기준에 종속되지 않는 17개의 예술·큐레이팅·기관·출판·미술사 연구 실천을 소개했다. 류딩, 루잉화, 수웨이가 편집한 『个体经验:1989–2000年中国当代艺术实践的对话与叙述』(2013) 역시 기존 미술사에서 충분히 위치 지어지지 못했던 1990년대 중국 미술 실천을 개별 경험과 대화를 통해 다시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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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서울시립미술관, 「세미나 〈자기이론: 페미니스트적 자기-발명〉」, 2023년 11월 19일, https://sema.seoul.go.kr/kr/whatson/event/detail?evtNo=1243004 ↩︎

回响:她们的世纪 전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