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당시 중국 여성 미술사는 어떻게 정립되었는지, 중국 여성 미술 작가는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여성주의 미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 등 을 살피기 위해 타오용바이 (陶咏白, 1937~)가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여성문화예술학사 (女性文化艺术学社) 와 공동 기획한 전시인 《세기·여성예술전》 (世纪·女性艺术展)  (이하, 세기·여성예술전)을 살피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타오용바이의 여성미술에 대한 견해와 활동 그리고 중국 여성사의 흐름을 함께 분석한다.  

타오용바이는 중국 여성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는 인물로, 1979년부터 미술연구에 종사하기 시작하여 유화에 관한 사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사료 발굴 및 인출 작업을 수행하였다. 중국여성사의 흐름을 보면, 1980년대 이전 사회주의 시기 중국에서 ‘남녀 평등’과 ‘여성해방’을 둘러싼 국가 주도의 움직임이 존재했으나 여성을  ‘무성(無性)적’ 존재로 전략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신문화운동을 전후 하여 중국에 봉건적 가족제도와 구습을 비판하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전파되었지만, 여권운동이 사회혁명에 종속되는 형태로 이뤄지며 실상 여권 신장을 좌절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 받는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한계를 남성 중심의 혁명 담론과 조직 구조에서 찾는다. 즉 혁명 지도부가 여성해방을 표방했음에도, 가부장적 사고와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를 충분히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성의 권리 의제가 사회혁명의 하위 과제로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마오쩌둥(毛泽东, 1893~1976)의 “여성은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다”(妇女能顶半边天 )는 구호는 사회주의 중국이 여성의 사회 참여와 남녀평등을 혁명의 주요 과제로 제시했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중국 여성들의 처우가 실상은 가정에서, 노동시장에서, 임금측면에서 여전히 해소하지 못했다1 물론, 여성해방운동에 의해 남성적 가치관에 의해 추방되었던 여성 주체가 다시 돌아왔지만, 이 주체는 개인적 주체도, 반항적 주체도 아닌 수동성과 굴복, 타협에 의한 환영적 주체로, 길들여진 주체로 읽힌다. 이러한 여성사의 흐름을 근간으로 1998년 개최된 《세기·여성예술전》에서 어떻게 여성미술을 바라보는지 살폈고, 타오용바이가 정의 내린 여성 미술의 특징에 관하여 살핀다.

타오용바이는 중국의 여성 미술사가이자 비평가이다. 그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집필, 비평, 학계 참여를 통해 중국 유화 및 여성 예술가에 집중한 연구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녀의 삶의 궤적을 보면,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 타오용바이는 군농장으로 보내져 일을 하게 되었고, 이후 그곳에서 겪은 고통을 기록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75년, 현재 중국미술학원(中国美术学院)의 전신인 문학 예술 연구소(国立艺术院)가 설립되면서 그녀는 미술 연구 센터의 사서로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공화주의 시대(1912~1949)발행된 미술 정기 간행물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그 시대의 현대 미술 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1979년 1월 타오용바이는 공식적으로 미술 연구 센터의 연구원으로 합류했으며, 이후 1980년대에는 중국 전역을 광범위하게 여행하여 다양한 미술 실무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중국 유화 역사에 대한 연구를 위한 주요 자료를 수집했다. 10년에 걸친 이 연구는 중국 본토에서 중국 유화에 대한 최초의 주요 조사 중 하나인 『중국 유화 카탈로그: 1700~1985』(中國油畫:1700~1985) 로 집필되었다.(도판 1.) 

(도판 1.)『중국 유화 카탈로그: 1700~1985』표지 

포스트 사회주의 시기로 분류되는 1980년대 후반부터 타오용바이는 미술사에서 여성이 과소 평가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현대 여성 미술작가에 대한 그녀의 주요 에세이와 비평으로 ‘중국 현대 여성 화가(中國當代女畫家, 1995),’잃어버린 역사: 중국 여성 회화사’  (失落的歷史:中国女性繪畫史, 2000),’주변부를 벗어나: 중국 여성예술의 기나긴 고난의 여정’ (走出邊緣:中国女性藝術的漫漫苦旅, 2016) 등이 있다. 그녀는 또한 학술 활동을 기획하고 조직함하여 여성 미술사 연구를 촉진하려고 노력했다. 1995년 동료들과 함께 여성문화예술학사를 공동 창립해 심포지엄, 전시, 출판 등을 통해 학제간, 국제 학술 교류를 추진했다. 이후 자세히 살펴볼 1998년 여성문화예술학사와 공동 주최한 《세기·여성예술전》에서, 타오용바이는 해당전시에서 아카이브 부문 ‘역사와 회고’ 섹션을 큐레이팅했고, 서문을 작성했다. 이후, 2008년에 그녀는 1932년부터 1982년 사이 출생한 32명의 여성 예술가들이 등장하는 《진행 시 ·여성》(进行时·女性)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녀의 인터뷰에서 왜 여성 예술사를 연구하냐고 묻는 질문에, 그녀는 “여성미술이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탓인지 지금은 그 열기가 식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적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행을 쫓기 위해서 여성미술을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성이며, 여성 미술을 들여다보는 것은 제 일이며, 제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해주길 마냥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83세로 나이가 많지만, 아직도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2 라고 답하였다. 그녀는 1980년대 성(性)이 학문적 의제로 떠오르며 연구와 분석이 시작되었던 시대적 배경과 함께 그늘 속에 가려진 여성의 미술 작가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까지도 타오용바이는 중국 여성 미술 작가의 동반자로서 함께하고 있다. 

《세기·여성예술전》를 살피기 전에 중국 여성사에서 주요 사건을 통해 여성 의식이 어떻게 출현하고, 변화했는지 먼저 짚어본다. 강유웨이 (康有为, 1858~1927)와 량치차오 (梁启超, 1873~1929)는 1898년 개혁운동에서 처음으로 ‘전족철폐와 여성교육의 확립’ 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수천년에 걸친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과 고통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특히, 1916년에서 1921년 사이 발생한 신문화운동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도전으로 여성의 독립을 위한 해방투쟁이 심화되었고, 지식인 여성들이 예술과 문화활동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뛰어난 여성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성역할 및 기대, 가족과의 갈등 등으로 인한 한계점이 존재하였다. 가족간의 갈등과 관련된 대표적인 사건으로, 1950년에 포판혼(包辦婚)의 불합리함을 해결하고자 혼인자유등이 포함되어 반포된 혼인법이 있다.3 이혼을 향한 부정적 사회 통념으로 인하여 1950년 산둥성에서만 이혼을 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살한 여성이 1,245명이었고, 중구와 남부 전체 구에서 1951년 6월까지 이혼 문제 때문에 죽임을 당한 여성은 1만명이상이었다.4 신중국 수립 이후에도 여러 사회 현상으로 표출되던 성차별은 많은 여성이 문화대혁명의 동참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마오쩌둥이 “시대는 변했다. 남녀는 평등하게 됐다. 남성 동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여성동지도 할 수 있다”라고 한 말이 문화대혁명시기에 슬로건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에 여성의 사회활동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탁아소나 유아원의 건립, 여성노동자의 ‘네 시기 보호’ 등 여성 관련 정책들이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혁명 담론은 여성이 남성과 동일하게 생산과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평등의 기준으로 삼았으나 여성의 신체적 조건과 돌봄 부담을 고려한 보호 정책은 오히려 여성을 특수화하거나 특혜를 부여하는 조치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해방이 남성화된 혁명 주체의 기준에 맞춰 이해되면서, 여전히 남아 있는 가부장제의 경향과 특혜로 여기는 주도세력에 의해 결과적으로 양성평등의 수준이 후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여성 해방운동은 실질적으로 여권을 신장하거나 성차별을 해소하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추상적인 전체로서의 개념적 틀로만 제시되었을 뿐이고 여성의 개별적 해방은 실제로 강조되지 못했다. 또한 여성은 구체적인 경험과 요구가 지워진 무성(無性)적 신체로 등장했으며, 실제 통치 과정에서 여성해방은 계급투쟁의 과제에 종속되었다.즉 건국이전부터 법적, 제도적으로 남녀동권을 규정하는 조치가 행해졌으나 기본적으로 여성의 물질적 기초의 확립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여성이 사회적으로 실제적 남녀동등이 가능하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여성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5 구체적 사례로 문화대혁명 시기 생산대열의 전사로서 남녀동지가 동등하게 참여해야 하며, 참여할 수 있다는 혁명역량을 고조시킨 결과, 그 결과 ‘철낭자’(铁姑娘), ‘여성 벌목대’(女子伐木队), ‘여성 석유탐사대’(女子石油勘探队)와 같은 중노동 종사자까지 배출하게 되는 혁명역량과 노동잠재력의 보유자로서의 여성의 단결과 조직을 격려하고, 대규모의 동원정책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6 이처럼  여성 개인 가치가 존중되기 보다는 여전히 사회 구조 안에서 여성의 권리가 한정적으로 작용했다. 중국 여성 해방운동이 이념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했던 것처럼, 1980년대까지 여성 미술 또한 그 한계점을 볼 수 있다. 일례로 193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작가 판위량 (潘玉良, 1895~1977)이 여성을 향한 시선의 항거로서 누드화 작품에서 여성의식의 출현을 보여줬고, 1980년대 초반 저우쓰총(周思聪, 1939~1996)의 〈이녀〉(彝女) 시리즈에서도 소수민족 여성의 모습과 경험을 작품에 기록하고 전개해 나감을 알 수 있다.(도판 2.)(도판 3.) 그러나 이들의 작업은 여성을 재현의 대상으로 삼는 기존 회화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들의 작품에 반영된 이상은 기본적으로 남성 예술가들의 이상-여성을 응시의 대상으로 그리는 것 혹은 남성이 해석한 여성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과 동일하다는 점이 비판적으로 논의 된다. 

(도판 2.) 빨간 목욕가운을 입은 누드, 1955, 종이에 수묵 및 색채, 91.6×46.8cm

(도판 3.) 저우쓰총,〈이녀〉시리즈

여성 작가들이 자기탐색을 통해 내면의 자원에서 이미지를 찾고 자신만의 담론방식을 확립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의식하게 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이러한 실천 속에서 자연스럽게 ‘여성미술’이라는 화두가 탄생하게 되었다. 《세기·여성예술전》 은 1998년 3월 3일에서 3월 8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참여작가 수는 78명, 출품작 수는 500여점으로  대형 전시였다. 전시 지역은 북경으로 북경중국미술관 (京中国美术馆), 북경당대미술관 (北京当代美术馆), 북경국제예원미술관(北京国际艺苑美术馆) 에서 동시 개최되었다.  1998년 《세기·여성예술전》 은 타오용바이와 동료들이 공동 창립한 여성문화예술학사에서 공동 주최한 전시이다.(도판 4.) 《세기·여성예술전》은 단순히 여성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가 아니였다. 당시 성별 정체성이나 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에 ‘여성 미술’ 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남성 중심주의적인 기준과 남성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전시 주최자인 여성문화예술학사는 중국 미술계에서 상당수의 여성 미술 작가들이 활동하였지만, ‘여성 미술’ 은 없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여성 미술작가를 선정 할때 유명세보다는 여성의 특질과 시각이 잘 반영된 작품을 소개하고자 하였다고 밝혔다. 신중국 건국 이후 타오용바이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여성 작가의 전시는 1960년, 1971년, 1981년 단, 3차례뿐이었다.  이 마저도 1980년대 이전까지 모두 체제 내 조직에 의해 소환 및 심사되는 형태로 전시를 개최되었다. 1998년 《세기·여성예술전》 은 타오용바이와 동료들이 공동 창립한 여성문화예술학사에서, 여성이 공동 주최한 전시임에 의미가 크다.  또한, 시기적으로 1995년 9월 베이징에서 유엔 제4차 세계여성대회가 개최되고, 대회에서 중 국정부가 양성평등을 중국의 기본 국책으로 선언하면서 양성평등을 위한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제공해 주며, 여성에 대한 주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전시는 여성 의식의 출현을 대변해주고, 여성 담론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역할을 해주었다. 

(도판 4.)《세기·여성예술전》 외부 전경

이러한 흐름에서 《세기·여성예술전》는 20세기 를 아우르는 100년간의 여성 미술의 흐름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타오용바이는 ‘세기와 함께 걷다 – 역사를 함께하다’ (与世纪同行——中国女性艺术的历史足音)라는 제목의 서문을 썼다. 서문은 세 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첫번째, ‘헌신하는 부인에서 – 개방을 향하다’, 두번째, ‘남녀는 모두 같다라는 혁명 구호에서 — 예술은 ‘공통성’을 지향한다’, 세번째 ‘새로운 시기, 여성자신으로 돌아가기-자각적인 여성회화로 향하다’이다.  남성중심주의 가치관에서 예술로서 여성이 해방되는 과정, 여성을 인식하는 과정 전반에 대해 서술하며, 여성 담론 생성의 역할을 해주었다. 서문은 ‘중국 여성미술’의 특징을 여섯 가지로 구분하여 제시한다. 첫째, 중국여성 미술은 개인화 경향을 보인다. 더 이상 여성 자신인 개인과 무관한 외부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내면을 활용하며 개인적 경험과 신체 언어에서 영감을 얻으면서 여성주의 작품은 더욱 개인적이고 사적인 성격을 띈다.둘째, 여성 미술은 이성 중심의 질서 보다 어린 아이 같은 환상, 임의적이고, 명확하지 않은 생리적이고 심리적 감에 반응한다. 셋째, 자연, 생명,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정치, 역사, 사회문제 보다는 자연, 생명, 인간 더 나아가 생존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숭고함과 영광을 추구하는 것보다 작고 사소하고 평범하고 평범한 것에 반응한다. 넷째, 여성 자신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다. 남성 미술 작가는 남성을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드물다. 여성 작가는 자기 탐구를 통해 넓은 영역의 ‘예술의 새로운 영역’(艺术飞地)을 개척했다. 이는 남성에 의해 주도되어온 기존 미술계에서 여성 자신의 문제를 통해 이전 예술과 구별되는 새로움을 획득하는 지점이 되었다. 다섯째, 여성미술은 전통 수공예와의 관계 속에서 발전한 담론을 형성한다. 봉제, 뜨개질, 직조, 자수 등오랫동안 여성의 육체적 노동과 연결되어 왔으며, 여성 작가들은 이러한 수공예 기술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면서 이를 여성미술의 고유한 조형 언어로 변형시켰다. 직조나 바느질과 유사한 언어가 모든 여성미술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미술에서 두드러지는 독특한 현상으로 제시된다. 여섯째, 여성미술은 생명감과 친밀감을 불러일으키는 매체와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설치미술에서 여성 작가들은 바늘, 실, 면화, 실크, 보풀, 섬유, 가벼운 재료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재료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상 생활과 밀접한 재료는 여성 미술 작가의 배치와 처리를 통해 특정 개념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전환되거나 생활적이고 여성적인 재료를 개념화 및 예술화를 한다. 이처럼, 타오용바이는 서문에서 당대 여성 미술은 전통적 미술 작가가가 표현해 온 가늘고 함축적이며, 청아하고 완곡한 단일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이야기하며, 《세기·여성예술전》 에서는 전통적인 미의식과 연계된 예술 장르도 볼 수 있고, 조형성이나 시각적 강도에서도 남성 못지 않은 확장감 있는 장르 등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당대 여성 미술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다채롭고 풍부한 예술의 풍경 속에서 공통적으로 공유되는 자질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자질들이 여성 미술이 말할 수 있는 화두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또한, 주지해야할 점으로 타오용바이는 ‘페미니즘 미술’ 대신 ‘중국 여성 미술'(中国女性艺术)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그에게 중국 여성미술은 서구 페미니즘 미술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중국의 여성해방은 서구 페미니즘처럼 여성 주체의 자율적인 권리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기보다, 국가와 혁명 담론 안에서 조직되고 제도화되었다. 따라서 중국 여성 작가들의 작업은 정치권력을 향한 직접적인 요구나 대항적 투쟁 의식을 표출하기보다, 자신의 삶의 경험과 삶의 가치에 대한 탐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때문에 타오용바이는 서구에서 이야기되는 페미니즘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고, ‘중국 여성미술’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펑지아리 (奉家丽, 1963~)창작 경험에 대해 이렇게 인터뷰다.(도판 5.) “예전에는 아름다운 것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 당시에는 헤매었고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랐다. 지금은 추한 것을 그린다.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만 여성의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도판 5.)《세기·여성예술전》 펑지아리 설치 전경

리훙 (李虹, 1965~)의 작업을 평론가 자팡저우 (贾方舟, 1940~)는 중국 현대 여성 예술가 중 가장 집요하고 의식적으로 여성주의 입장을 고수하는 미술 작가로 평가했다. (도판 6.) 감각적인 색채와 날카로운 필치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가부장적 문화를 힘껏 청산하고 비판하는 것이 작가의 사명감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여성 예술가가 창작할 때는 항상 남성의 말 속에서 생존을 추구했다. 이런 무의식은 여성이 창작할 때 이중으로 억압받는 결과를 낳는다. 여성 예술가들은 나부터 시작해 다시는 공모자 노릇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도판 6.) 《세기·여성예술전》 리훙 설치 전경

《세기·여성예술전》은 총 전시는 4부분으로 구성되었다.(도판 7.) 첫 번째로,  역사와 회고 – 문헌전 (历史与回顾——文献展) 은 타오용바이가 맡은 파트로, 문헌전은 동시대적 맥락에서 이어질 수 있는 역사가 긴 복도라고 비유했다. 이 긴 복도 끝에서우리는 중국 여성 예술가들이 약 100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렀는 지 볼 수 있다. 이 역사가 긴 복도를 거쳐 이번 전시의 ‘중심’과 ‘주변’에 이르면 중국 여성미술의 ‘안과 밖’을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상과 현실 – 소장품전 (理想与现实——藏品展)은  이 곳은 전시의 중심부로 읽힌다. 첫 번째 부분과 세 번째 부분을 잇는 전후 맥락 속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첫 번째 부분의 논의를 이어받고, 세 번째 부분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으로서 전체 전개 과정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셋째로 자아와 환경 – 주변 전 (自身与环境——外围展) 은 여성미술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읽힌다. 그러나 동시에 ‘주변전’이라는 명칭은 당시의 사회적 환경과 여성미술의 현실적 위치를 반영한다. 현재의 환경과 자신의 상황으로 볼때 아직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 혹은 주변에 머물러야 했던 현실을 드러낸다.  넷째로, 지속과 진화 – 특별전( 延续与演进——特展)은 앞의 3개의 파트가 역사적 과정에서 수직적 발전의 세 가지 층인 여성 의식의 출현, 여성 경험의 전개, 페미니즘의 부상에 나타난다면, 여기서는 3세대에 걸친 미술 작가의 사례를 살펴 전시한다. 이상 4개의 파트 전시를 통해 중국 여성미술의 현대적 모습과 미래의 방향을 입체적으로 제시하였다고 평가받는다. 입체적으로 평가 받는 이유로는 아래와 같다. 《세기·여성예술전》은 현대 중국 여성미술이 이전 시대의 미술과 구별되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주었다. 이 전시는 여성미술이 중국 현대 미술에서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 되었음을 입증했다. 또한 중국 현대미술의 역사가 더 이상 순전히 남성의 시각적 경험만으로 서술될 수 없으며, 여성 예술가들이 독자적인 시각과 표현을 통해 새롭고 중요한 장을 써냈음을 보여줬다. 전시는 여성 예술가들의 재능과 성취를 확인하는 자리였을 뿐 아니라, 여성 미술가들이 더 이상 ‘무성(無性)적 집단’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남성 작가의 길을 답습하지 않고 자기 탐색을 통해 고유한 주체와 집단을 형성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중국 여성들이 더 이상 이야기되고, 쓰이고, 그려지는 대상의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고, 쓰고, 그리고, 행동하기 시작했음을 제시했다. 인슈양시 (殷双喜, 1954~)평론가는 여성 미술 평론가들이 예술작품에 대해 깊이 있게 논평해야 하고,  가능한 한 그 자리에 있어야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하며,  현장성과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도판 7.) 《세기·여성예술전》 전시 전경

타오용바이의 일관된 의도는 여성이 고유한 작가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고, 과거 무시되었던 여성 미술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인식하며, 여성 예술의 특성과 가치를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타오용바이는 이러한 의도 아래 여성화에 대한 본인만의 정의를 내리며 여성 미술 작가의 작품이 어떤 위치에 있는 지 살폈다. “여성적 시각, 여성의 정신적 정서를 표현하고 여성 특유의 표현방식인 여성담론을 담은 그림을 여성화”라고 하였다. 여성 미술 등장 이전과의 차이점은 작품 속 등장인물의 여성적 지위와 여성의식, 여성운동 과정에서의 역사적 의의에 더욱 주목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타오용바이의 연구와 시도들은 미술사 내에서 여성을 재발견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남성 미술사를 보충하고, 역사상 여성 예술가들의 고립된 연대기를 작성할 수 있을 뿐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또한, 《세기·여성예술전》  서문에서 여성의 특징을 대립성에 근거하여 정의 내리려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해당 전시는 여성 미술에 대한 인식 및 개념이 부재했던 당시 여성 미술 작가 100년을 재조명하고 재정립하는 시도 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세기·여성예술전》  은 타오용바이 혼자 주최한 것이 아니라 여성미술학회를 조직하여 공동 주최하였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데,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여성들과 연대하여 이룬 전시라는 것에 의의가 크다.《세기·여성예술전》은 전시 자체 뿐만 아니라 여성 예술가와 평론가가 모여 ‘변화 속의 예술과 여성’을 주제로 토론회를 주최하며 공동의 목소리를 내며 여성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데에 역할을 했다.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는 인시유젼(尹秀珍, 1963~), 차이진(蔡锦, 1965~), 샤오페이(邵飞, 1954~)와 같이 대표적인 중국 여성 미술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세기·여성예술전》은  여성 미술 작가가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 [긴 글] 오늘날 중국 여성의 현실, https://wspaper.org/article/27495

2) 罗裔纬, (2015년 10월 8일), 女性艺术,在进行时—评论家陶咏白访谈, http://www.art-woman.com/HongViewDetail.aspx?id=573
3)  포판혼은 당사자의 의사없이 가부장이 결혼상대를 결정하는 포판혼은 중국 전통 결혼 양식이다. 포판혼의 불합리함을 해결하기 위해 제정된 《혼인법》의 기본원칙은 ‘남녀혼인자유, 일부일처제, 남녀평등, 여 성과 자녀의 합법적 권익 보호’로서 남녀평등과 여성권익보호를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4)  “혼인법 반포와 결혼의 자유”, 중국근현대여성사, 229-233p, 윤혜영 천성림 지음, 서해문집
5)  김영자(1988), “중국국민당 부녀정책에 관한 연구”, [이대사원] 22.23호, pp.335~68. ____(1990)
6)  중국의 현대화 개혁정책과 여성문제, 한국여성정책 연구원, 김염자

참고문헌 

단행본

윤혜영&천성림(2016), “중국근현대여성사”, 서해문집

학술논문

정준호,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양성평등정책 연구”,2011,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염자, “중국의 현대화 개혁정책과 여성문제”, 2010,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웹페이지

김민재, (2019년 9월 2일),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다, 사회주의자, http://socialist.kr/not-socialist-feminism-but-socialist-womens-liberation/

Aisa Art Archive, Tao Yongbai Archive, https://aaa.org.hk/en/collections/search/archive/tao-yongbai-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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