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량 개인전 《개인전, 뭐 하지?》를 보고
개인전은 한 작가의 시간을 드러낸다. 오늘날 개인전이 보여주는 작가의 시간은 과거와 어떻게 다를까? 개인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왜 해야 하는 걸까?
김학량의 개인전 《개인전, 뭐 하지?》 에서 김학량의 시간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그가 통과해 온 시간과 내가 미술계에 진입한 시간 사이의 약 30년이라는 차이 속에서 한국 미술의 흐름을 다시 가늠하게 했다. 이 같은 시간적 간극을 의식하며 본 글은 김학량 개인전을 리뷰하는 동시에, 한국 미술의 연대기적 흐름 속 경향을 병치한다.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며 개인전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는 지 추적한다.
혼성 그 이후: 장르적 특징
김학량 개인전 《개인전, 뭐 하지?》는 최근 전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되는 전시 형식과 다른 구성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하나의 장르만을 고집하지 않는 모습 —전시 유인물, 쓰레기봉투 등 일상의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작업실을 연상시키는 연출을 하는 등—을 통해 특정 장르에 수렴하기보다 혼성적 상태를 드러낸다. 이러한 구성은 오늘날 전시가 놓인 조건과 대비될 때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갤러리 수의 증가와 함께, 2020년대에 접어들며 전시는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의 개인전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양상을 보인다.¹ 이러한 양상은 각종 전시에 있어 즉각적 해독이 가능하고, 소비가 용이한, 검증된 단일 장르가 반복적으로 선택되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이와 같은 전시 환경에서 현상에 반하는 혼성적 시도 —매체와 재료를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등—는 어려워지고, 시장의 논리와는 어긋난 것으로 취급되거나 부차적인 위치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개별 작가와 전시가 동시대의 현상을 따를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에 비해 《개인전, 뭐 하지?》는 특정 장르 구분에 귀속되지 않는데, 이는 김학량이 통과해온 시간과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은 세계화의 과정에서 기존의 이념 중심적 집단 논리가 약화하며 다원화되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른 매체와 형식을 병치하거나 혼합하는 혼성을 하나의 장르적 특징으로 형성해왔다.² 김학량 개인전은 1990년대 형성된 혼성의 경향을 띠면서, 오늘날 혼성이 작동하는 맥락과는 다른 위치에 있다.
1990년대의 혼성은 세계화와 한국 사회가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거친 배경 속에서, 서로 다른 형식과 장르가 불균형하게 공존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내포한다. 혼성은 선택된 것이라기보다 사회구조적 조건 속에서 드러난 형식적 결과에 가까웠다. 당시의 미술은 기존의 체계를 거부하기보다, 이를 변용하거나 서로 다른 장르를 혼성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는 더 이상 회화, 조각과 같은 전통적 장르 구분이 작품의 핵심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만화, 디자인, 건축, 상업 사진 등 다양한 시각 문화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확장해 나갔다. 반면, 오늘날의 혼성은 장르적 긴장과 이질성의 공존을 통해 문제의식을 형성했던 1990년대의 것과는 다른 환경 속에서 작동한다.
오늘날에는 스마트폰을 통한 즉각적인 정보 접근과 알고리즘 기반의 맞춤형 추천 시스템을 통해 혼합과 교차가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혼합과 교차라기보다는 동일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반응이 검증된 이미지와 형식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선택의 범위가 수렴된 동일화인 것이다. 전 세계 미술관들이 유사한 의제와 형식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현상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 결과 과잉된 정보와 이미지의 축적 속에서 전시는 맥락이 충분히 연결되지 않은 채 파편적으로 제시되거나, 반대로 이미 검증된 형식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 결과 오늘날의 혼성은 과거와 달리 능동적으로 구성되기보다, 그 유사성, 동일성, 반복성으로 인해 의미를 담기 어렵고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김학량의 개인전은 1990년대 혼성이 지녔던 장르적 특징을 다시 호출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드러나는 혼성적 면모는 과거로 회귀라기보다 서로 다른 혼성의 조건을 통과해 온 김학량의 작업이 현재에 위치하는 방식으로 읽힌다.

작가—큐레이터
김학량은 이번 전시에서 기준을 나누어 자신의 작업을 분류하였다. 《개인전, 뭐 하지?》는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되돌아보며 수행한 일종의 자기 피드백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시 구성 방식은 김학량이 작가이자, 큐레이터, 그리고 교수라는 다중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했던 형태로 보인다. 90년대, 전시가 점차 의미 생산장으로 변화하면서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한국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전시는 작가 주도 또는 평론가의 중재로 구성되는 형식을 탈피하길 요구받았다. 전시의 구조와 맥락을 설계하는 전문적 역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는 1990년대 한국 미술계에 ‘큐레이터’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등장한 여러 유형의 큐레이터 모델—평론가-큐레이터, 행정가-큐레이터, 작가-큐레이터, 큐레이터-큐레이터—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³
《개인전, 뭐 하지?》는 김학량에 의해 큐레이션의 과정을 거치는데, 총 7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동선을 구성하고 각 구간은 아마도예술공간의 물리적 공간, 정체성 등의 맥락이 고려되었다. 먼저, 보라색 나비가 길잡이를 한다. 전시장에는 보라색 나비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관람객의 이동을 유도한다. 첫 번째 공간인 ‘거울방’에서는 사방을 거울과 유사한 장치로 구성해, 모든 것이 은은하게 서로를 반영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두 번째 ‘미술을 찾아서’에는 익살과 풍자, 해학이 묻어나는 드로잉들이 배치되어 있다. 세 번째 ‘거울, 자화상’에서는 작가로서, 미술에 관계하는 당사자로서, 그리고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을 해체하는 드로잉들이 제시된다. 이곳은 김학량이 작업의 주체이자 해석의 주체로 자신의 다중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네 번째 공간 ‘두근두근’에는 온실 구조 안에 ‘두근두근’, ‘우왕좌왕’, ‘휘청휘청’, ‘노심초사’와 같은 단어들이 가득 적혀 있다. 이는 김학량이 언급한 “내 몸을 두드리기, 구멍 내기, 풀어헤치기(해체)”라는 작업 태도를 언어의 반복과 리듬으로 시각화한 구성으로 읽힌다. 다섯 번째 ‘수족관’에는 북한 잠수함 내부를 묘사한 그림과, 간첩들이 착용했던 의복과 신발을 세밀하게 그린 작품들이 놓여 있다. 여섯 번째 ‘메아리’에는 김학량이 큐레이터로서 전시에 초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초대한다. 김대홍의 〈스페이스 댄서〉, 한상혁의 〈고양이 부뚜막에 오른다〉, 김남훈의 〈18911 죽음의 열거〉를 만나 볼 수 있다. 이러한 초대는 개인전을 작가만의 성취를 집약하는 장으로 한정하기보다 큐레이터로서 맺어온 작가와의 관계를 반영함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일곱 번째 공간 ‘먼, 길’에는 쓰레기가 가득 담긴 종량제 봉투가 벽에 세워지고, 도깨비불이 깜빡인다. 김사인의 시구 “먼 길을”이 적혀 있다. ‘먼, 길’을 에필로그로 제시하며 사람 사는 길과 꿋꿋하게 한 걸음 나아가자는 뜻을 담은 전시의 주제 ‘그대에게 가는 길’을 제시한다.
7개의 동선은 작가로서 아마도예술공간과 대화를 통해 구성된 결과물이자 큐레이터로서 자신의 작업을 다시 읽고 재구성하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이는 작품을 선보이는 것과 동시에 기획이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전시의 동선과 작품 간의 연결 방식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큐레이터의 시선이 녹아든 개인전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전 왜 하지?
김학량은 작가 서문의 서두에 개인전을 하게 된 배경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서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아마도 예술공간에 대한 개인적 흥미에서 출발해 공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개인전이 대개 “어떤 주제나 문제를 탐구하다가 중간 결산하거나 총정리하면서 자기가 이룩한 성과를 남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나, 그 반응을 살피려고들 하는 경우가 흔하다”라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개인전은 “두서 없이 해메이며 이야기 판을 짜고 어질러가면서 정리”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오늘날 개인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개인전은 과거에도 작가를 평가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당시의 평가는 기성세대를 향한 비판과 저항, 사회·정치적 억압과 같은 시대적 조건과 맞물리며 이데올로기적 입장이나 사회 변혁의 문제의식과 밀접하게 결부된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개인전에서 평가는 작품의 형식과 작가의 태도, 그리고 미술을 통해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중점을 두었다. 오늘날 개인전은 이에 더해 향후 초대 가능성, 시장 적합성, 가격 설정, 비평적 위치까지 동시에 평가하는 자리가 되었다. 과거의 개인전이 ‘미술(혹은 작가)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물었다면, 오늘날의 개인전은 그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면서도 ‘누가 작가로 생존할 수 있는가’ 자격의 문제를 동시에 묻는다. 그런 면에서 《개인전, 뭐 하지?》는 작품의 형식과 태도, 문제의식을 종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개인전인 동시에, 오늘날 개인전이 작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이러한 개인전의 의미 변화는 미술을 둘러싼 제도적 환경의 재편과도 맞닿아 있다. 대안공간과 신생공간의 등장을 거치며 드러난 제도적 한계와 지속 가능성의 문제는, 이후 미술 실천이 더욱 안정적인 유통 구조를 모색하게 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개인전은 개별 작가의 성과와 가능성을 동시에 검증받는 구조 속에 놓이게 되었다. 과거의 개인전이 작업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면, 오늘날의 개인전은 그 질문이 시스템 안에서 얼마나 유효한지를 함께 증명해야 한다.
최근 원로 작가와 나눈 대화를 통해 미술과 전시가 갖는 의미의 변화에 관해 보다 구체적으로 의식하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의 목표에 대해 의견을 나눈 자리에서, 과거에는 비교적 분명한 공동의 목표 아래 집단적인 방향성이 작동했다면 오늘날에는 목표가 개별 단위로 분절되어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미술계에서 무엇이 미술로 인정되는가에 대한 집단적 합의가 성립하기 점차 어려워졌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미술의 담론을 공동으로 형성하고 공유하던 힘 역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 같은 변화는 개인전이 더 이상 공동의 논의를 촉발하는 장이라기보다, 각자의 위치와 생존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로 이동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동시대의 전시가 어떠한지, 지금의 개인전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고려할 때, 이번 전시가 갖는 차별점은 명확하다. 김학량의 《개인전, 뭐 하지?》는 미술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며 개인전이 요구받는 성과와 효율의 논리로부터 한발 비켜선 위치를 점한다. 김학량이 던진 질문은 곧, 오늘날 개인전이 어떤 필요와 조건 속에서 성립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된다.
1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미술시장조사 보고서」(2020–2024)에 따르면, 국내 화랑 수는 2020년 503개에서 2022년 831개로 급증했으며, 이후 2023년 895개, 2024년 877개로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다.
2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리플릿에서 확인할 수 있듯,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이후의 한국 미술의 경향과 특징을 ‘혼성의 공간: 다원화와 세계화’로 규정하며,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개인에 대한 주목과 문화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이질적인 문화의 혼합과 창작 방식의 다원화가 두드러진 시기로 정리한다. “MMCA 서울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국립현대미술관,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2&exhId=202501060001886 (2025년 12월 26일 접속).
3 본문에서 언급한 큐레이터 유형은 김장언의 분류를 참조하였다. 김장언, 『한국미술 다시보기3:1990년대-2008』,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지식 생산의 장’(서울:현실문화, 2022) 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