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아트플랫폼과 난지 창작스튜디오, 경기 창작 센터의 입주 조건 변경, 폐지, 용도 변경 소식을 연이어 접하면서,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지속 가능하지 못한 이유가 궁금해졌기 때문에 이 글을 시작하였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직접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도 한켠에 있기도 하였다. 자본주의적 도시화 논리, 레지던시의 개인적 영역과 사회적 맥락, 지원의 수혜자로 창작자를 바라보는 시선, 폐허와 아티스트 레지던시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며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지닌 다양한 정체성을 재고하며 현재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 동향과 여론을 살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탐색하고자 한다.
글을 들어가기 앞서,
먼저,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주된 목적이 예술가의 창작 활동 진흥과 문화예술 발전을 통해 국민 삶의 질을 고양하는 것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래 자본주의 욕망에 따라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목적성이 쉽게 바뀌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였다.
다음으로, 레지던시가 지역민과 소통의 공간으로 기능하기를 바라는 시각과 레지던시가 지역 공동체의 거점 기능을 부여받게 되는 점을 살피고, 이 지점에서 지역민과 창작자의 관계성 그리고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이 교차하는 부분을 살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천아트플랫폼, 난지 창작스튜디오, 경기창작센터가 유휴공간과 폐허를 활용하였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폐허를 외형적 성공과 도시 미감 개선을 목적으로 시각예술(미술)을 단순히 덧붙이는 식으로만 활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발터 벤야민의 『파사젠베르크(Passagen-Werk)』에서 언급된 파사주와 폐허의 개념에 주목하였다.


2024년 마지막 난지창작스튜디오의 오픈스튜디오 전경 (임창곤, 흑표범)
자본주의 욕망에 따라 용도가 변경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인천아트플랫폼은 지역공동체를 살릴 문화공간으로, 경기창작캠퍼스는 생활 문화의 기능을 더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난지창작스튜디오는 서울시 쓰레기 소각장 신설에 폐쇄가 결정되는 등 기존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들이 쉽게 사라지거나 그 역할을 변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그 용도와 목적이 쉽게 바뀐 것임을 유추할 수 있는데, 이는 문화예술을 활용한 오락산업 등 유행의 매커니즘이 대도시와 공간을 지배하게 되며 문화예술을 활용한 관광 그리고 문화예술을 소비화하는 방향으로 자본화되어 감을 시사한다. 소비를 격려하기 위해서는 지역민의 참여를 유도하여야 할 것이고, 이는 미술을 매개로 지역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결국, 지역의 브랜딩 혹은 마케팅 전략으로 공간 즉,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수단이 되는 방식으로 미술을 전락시킨다. 대표적인 예로, 인천아트플랫폼과 경기창작 캠퍼스를 들 수 있다. 2024년 2월 인천아트플랫폼 15주년 기념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지속적인 지역민과 예술인의 연결과 관광객 유치에 대한 내용이 지속적으로 언급되었다. 실제로, 2023년 10월 ‘인천아트플랫폼 운영 개편안’을 통해 시민들을 위한 시설을 확대하기 위해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를 축소 이전하거나 아예 기능을 폐지하는 등의 정책이 추진된 바 있다. 경기도는 경기창작센터를 복합문화시설로 탈바꿈하겠다는 목표로 2021년 레지던시 운영을 중단하였고, 2024년 7월 ‘경기창작캠퍼스’로 공간 명을 바꾸어 재개관하였다. 기존의 경기창작센터의 운영방식과 달리 로컬 크레이터와 시민 문화동호회의 입주를 격려하며, 경기도민의 일상적 문화예술 및 로컬 크리에이터 활동을 지원하고 장려하여 시민문화 진흥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천아트플랫폼과 경기창작캠퍼스 이전과 달리 모두 지역민을 고려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관광을 강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지역민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관광을 지향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자본주의가 공간을 변화시켰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로 여겨진 것이고, 또 자본주의는 즉각적인 소비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복합문화공간은 이러한 취지에서 소비자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나의 공간에서 빠르게 경험하도록 설계된다.
창작자와의 상호지원과 우정
1. 창작자와의 신뢰 관계 그리고 우정
『미술노동자』의 저자 줄리아 브라이언 윌슨(Julia Bryan-Wilson)는 ‘미술가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미술은 재현의 시스템이나 의미화 형식에 어떤 압력을 가하는지, 미술가는 경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창작자의 창작 행위는 여가시간에 추구하는 자기표현이자 혹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정의되는 노동의 바깥에 놓여있음을 뜻하게 된다. 지역에서 그리고 미술의 맥락에서 작용하는 제도들을 살피면, 창작자의 위치는 금전과 공간 지원의 수혜자로 지원 제도가 요구하는 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원 제도의 수혜자인 창작자는 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거나, 자기생각을 자유롭게 낼 수 없게 되며 이는 창작자이든, 아티스트 레지던시이든 앞으로의 확장 가능성이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대중성으로부터 먼, 팔리지 않는 미술은 도태되기 마련이고 결국 지원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창작자들은 지원제도의 종속성과 창작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자리에 존재하게 된다.
2024년 11월 아르코 미술관에서 개최된《나의 벗 나의 집》은 “교류와 협력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시대에 이 제도를 집중 조명하는 것은, 외부인과의 연결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을 넘어 보편적 포용과 환대의 개념”으로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주목한다. 연계 프로그램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전시와 달리 작품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서로 경청해야할 것이며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하기 때문에 정서적 교류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레지던시의 재사유’ (Rethinking Residencies)의 공동 설립자인 카리 콘테 (Kari Conte)는 ‘레지던시의 재사유’에서경쟁보다는 협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상호 지원을 기반으로 한다고 말하였다. ‘레지던시의 재사유’는 모든 부분에서 결과보다는 투명한 과정을 우선시하며, 참여자 개개인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장려하였기 때문에 현재까지 지속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수평적 관계와 자발적인 헌신으로 쌓은 깊은 신뢰와 안전망이 중요한 자세임을 강조하며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하였다.
이문석 독립 기획자는 <원룸 레지던시>라는 이름으로 해외 예술인들이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비공식 레지던시를 운영 중이다. 해외 예술인들이 한국에 초청되거나 잠시 머물러야 하는 일이 생길 때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공모형식이 아니라 한국에 체류해야 할 해외 예술인들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집을 제공해주는 형식이다. 이때, 정식 숙박시설이 아니고 자신의 집을 내어주는 형태인 점에서 창작자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이용하는 대가가 없기 때문에 서로의의 삶 속에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형식으로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발전할 수 있게 된다. 공동체로서 더욱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고 ‘돌봄’의 관계에서 주거 형태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 또한 제공한다. 앞서 살펴본 두 사례는 기존의 수혜자라는 창작자의 위치를 이동시켜 우정과 환대의 관점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바라볼 수 있음을 제시한다.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창작자들이 머무는 집이 되어주기 때문에 행정적 절차만으로 평가될 경우, 레지던시를 이루는 것들이 창작자와 함께 살아가는 동료이자 지지자임을 놓치게 된다. 이는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제공하는 주체의 편의와 결과론적 성과에 따라 운영된다면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지속 가능해지기 어려워진다.
2. 창작자에게 강요된 사회적 역할
더불어, 19990년대 후반부터 창작자들이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기를 바라며, 그들의 창작활동과 무관한 사회적 역할이 요구되는 경향을 볼 수 있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 운영 주체가 커뮤니티 아트나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지 않아왔던 아티스트에게 지역민과의 교류를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려면 창작자에게 충분한 설명과 설득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창작자는 이탈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레지던시가 이처럼 창작자를 고려하지 않은 외부적 효과에 치중하다 보면 그 본질적 기능을 잃울 수 밖에 없다.
아티스트 레지던시 입주한 창작자가 지역민을 위한 역할을 어느정도까지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리기 전에 인천 아트플랫폼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천 아트플랫폼은 원도심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세워진 일본우선주식회사와 삼우인쇄소, 금마차다방, 대한통운 창고 등 폐허를 리모델링하여 설립된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2023년 10월 인천시는 ‘인천아트플랫폼’이 시민들에게 충분히 개방되지 않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쇄를 결정하였다. 이는 창작자의 존재와 창작활동이 사회적 가치와 반드시 연계되어있어야 한다는 시각이 반영된 의사결정의 결과이다. 이후 인천시는 스타벅스 유치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활용방안을 모색하던 중 2024년 인천 지역 청년 작가들만 입주할 수 있도록 재개방하였다. 이 사례는 창작자의 창작활동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는 레지던시 운영 주체의 요구와 창작활동 지원의 취지가 충돌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이처럼 창작자의 사회적 참여와 지역사회 프로그램 실행 등을 요구하게 된 데에는 공공영역에서 작가와 관객이 상호작용을 하는‘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수잔 레이시(Suzanne Lacy)가 제시한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은 삶과 예술의 결합, 관람자의 참여를 포함하고, 관람자가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작업의 과정이 작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완결된 제작이 아니라 미완결의 상태 또한 작품의 범위로 바라본다. 미국은 1990년대 이후 공공영역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을 공공미술 정책의 흐름에 포함했다. 지역의 현안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기존의 건축 속의 미술과 차별점을 둔 것이다.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은 창작자의 자발적 동기에 의해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창작자가 지역민과 교류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민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단기 입주라는 한계점을 안고 있다.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을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삶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고, 일방적으로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는 물론 지역민도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결국,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공공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창작자에 대한 일방적 요구가 아닌 창작자와의 전인격적인 커뮤니케이션-우정, 신뢰, 안전망 제공 등-이 필요하며 나아가 안정적인 입주 환경을 제공하고 이것이 지역민과도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따.
발터 벤야민의 ‘폐허’의 개념으로 바라본 아티스트 레지던시
발터 벤야민은 폐허를 단순히 물리적으로 파괴된 잔해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장소이자, 역사적 기억과 사회적 맥락을 담은 상징적 공간으로 바라본다. 이는 새로운 사유와 전환의 계기를 제공하며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응축된 ‘변증법적 이미지’가 된다. 변증법적 이미지는 과거가 현재에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이미지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지나간 과거가 현재에 드러나거나 연결되는 한순간의 번뜩임과 같은 모습이다. 발터벤야민은 폐허를 발전 논리에 따라 과거를 오래된 것으로 치부하고 없애야 할 존재로 볼 경우 그 진정성과 비판적 가능성을 상실하게 된다고 말한다. 폐허를 삭제할 대상으로 바라볼 경우 그곳의 역사와 과거를 상실한 공간이 되며 아무것도 지속하지 못한 채 공허한 감각을 주며 도태될 것이다. 마치 존재한 적이 없는 것처럼 공간이 남게 되면 사람들에게 점점 잊힐 것이다.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 또한 쓰레기 매립장, 수용소, 폐공장 등 용도폐기된 건물들의 과거를 밀어내고 과거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서 시각예술(미술)을 그 곳에 점거시킨다. 이때, 시각예술(미술)은 폐허를 값싸고 보기 좋게 감출 수 있었다. 2010년대 필자가 기억하는 서울에서 마주한 미술공간들은 폐허가 될 곳, 폐허가 된 곳에 있었다. 눅눅한 냄새, 좁은 통행로,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폐허는 그 곳에서 존재했던 역사는 생략되고, 현재에 있어서는 안되는 사라져야 할 곳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폐허와 유휴공간을 죽은 건물로 바라보며, 이를 없애 랜드마크로 바꾼다는 등 과거를 송두리째 삭제해 리는 모습들 또한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논리에서 폐허는 ‘무의미한 잔재’로 완전히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난지창작스튜디오도 새로운 소각장을 신설하기 위해 2024년 운영 종료 되었다. 자본주의 논리에 빗대어 쓰임이 다한 공간은 언제든지 쉽게 제거될 수 있다는 논리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천아트플랫폼과 경기창작 캠퍼스도 마찬가지로 폐허를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경제와 효율의 가치에서 비교적 그 가치가 낮은 미술로 은폐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폐허를 철거하거나 재개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결국 자본주의가 꿈꾸는 이상적 도시 모습에 의해 폐허가 다시 한번 파괴되는 과정이다.
그럼 폐허를 활용한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출발점은 어떤 목적에서 시작되었을까? 1997년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창작 공간을 지원하였다. 지역의 폐교를 활용하여 시각예술가에게 작업실을 지원〈미술창작공간지원〉(1997~1999)은 국고에 의한 문예진흥원 위탁사업으로, 폐교 공간을 임차해 이를 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으로 제공한 사업이다. 1997년도에는 논산미술창작실(양촌초등학교 장원분교), 강화미술창작실(신성초등학교)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당시,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예술가들이 창작할 수 있는 공간적 지원을 통해 여건 개선, 지역 및 도시 재생 그리고 지역민과의 문화교류 및 향유에 대한 기회를 제공하고 참여할 수 있게끔 독려하는 데에 취지가 있었을 뿐이지, 폐허의 역사와 기억은 고려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후발주자인 2008년에 서울문화재단에서 시행한 아트팩토리 사업은 “퇴락한 공장이 예술가와 시민의 창의성이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공장 이적지 등 도시 유휴공간을 창작공간으로 조성한 아티스트 레지던시로는 ‘금천 예술공장’이 있다. 문화예술로 쇠락한 지역을 다시 활동적인 지역으로 재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한 도시 재생의 과제 속에 이들의 유토피아적 이미지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꿈꾸었다. 이때, 미술과 창작자들의 활동은 도시 재생의 유토피아적 성과로 직결되기 때문에 도시재생 사업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아트팩토리 사업의 도시 정책적 의미를 분석한 김효정(한국문화 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해당 사업에서 ‘왜 폐허를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답변으로 먼저, 새로운 시설에 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것이며, 다음으로, 폐시설의 철거와 새로운 개발에서 유발되는 경제적 부담과 그것을 방치함에서 오는 환경 적·사회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요, 마지막으로 폐(유휴시설)시설과 예술인의 접목으로 야기되는 기이함에서 출발하는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기 때문 1 이라고 답변하였다. 하지만, 앞서 말한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아티스트 레지던시 수는 현재까지 남은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경제적 부담과 환경 적·사회적 부담을 낮출 수 있었지만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주체가 폐허가 가진 과거와 현재, 미래-건축양식, 역사성, 과거 등-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도 있는 운영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당장 낡은 폐허를 쓸모의 관점에서만 활용한 뒤 이를 완전히 밀어내는 식의 접근은 폐허를 정체성이 없어는 무색무취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다면, 약 20여년이나 지난 초기 목표가 2024년에는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여러 관계자들의 의견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현위치와 나아갈 방향
1.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현위치
2023년 월간미술에서 진행한 좌담회 “레지던시의 역할과 의미, 그 방향에 대하여”에서 국내 레지던시의 위기와 방향성을 논했다. 참석자 모두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여러 이유로 활력을 잃고 축소되고 있다는 데에 공감했다. 미술비평가 홍경한은 경기창작센터에 대한 문제점으로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작가들에게 작업실을 빌려주는 공간의 역할을 넘어서 복합문화공간, 지역문화센터로서 역할 변화가 시도되면서 가시적 효과성을 강조하게 되고 이로 인해 서로의 가치가 충돌하게 되었다고 본다. 또한 참여자 모두 아티스트 레지던시 운영 주체에 따라 목적이 달라지는 레지던시를 문제점으로 바라보며 성과주의에 치중한 모습들을 지적한다. 본 글에서도 창작자들의 창작 원리와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 경제적 효과를 요구하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공간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간과하고 자본주의적 도시화의 도구로만 기능할 때 기억의 장소로서의 가능성이 상실됨을 문제로 바라보았으며, 행정적 지원과 절차로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바라보며 사람과 사람 간의 존중 문제 그리고 창작자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는 지역민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위기를 대처하는 해결책 제안
첫 번째로,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방향으로 공간의 용도를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과 창작자가 가진 본질적인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자본주의와 발전 논리에 따라 그 역할과 운영을 쉽게 바꾸거나 폐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두 번째로,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경계에 대해서 세분화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부여되는 혼재된 목표를 명확히 구분하여, 지역민과 교류를 주선하기 위해서는 설득과 배려를 거쳐 개방적인 창작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목적으로 하는 레지던시를 운영하고자 한다면, 공공미술 혹은 커뮤니티 아트에 관심이 있는 예술가를 초청하는 것을 권장한다.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모집하는 창작자의 관심사와 작업 주제를 고려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경우 보여주기식 사업 성과로 보여질 수 있다.
세 번째로, 예술이 일반적으로 가치 있게 여겨지는 효율성과 생산성의 노동 문법에 벗어나 있다는 점과,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사람과 호흡하며 진행하는 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과정과 기획이 중요한 사업임을 인지해야 한다. 삶의 일부로 창작활동을 행하는 시민으로서 창작자를 바라보며 행정적 성과를 위한 도구로서 창작자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 행위가 그들의 삶의 일부임을 인지하는 태도가 아티스트 레지던시 운영 주체에게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유휴공간, 폐허를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자본주의 욕망에 따르기 보다는 역사적 맥락과 개인적 경험이 살아 있는 장소적 경험을 강조하고 공간의 본질적 정체성을 상실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 인천 아트플랫폼은 공간이 소비주의적 목적에 봉사시켰고, 초기에는 예술 창작의 장으로 기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본래의 역할이 약화되고, 지역 경제 활성화, 관광, 도시 이미지 개선 등 외부적 목적에 종속된 사례를 앞서 살펴보았다. 유휴공간과 폐허와 같은 공간들이 시민들에게는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거나, 도시적 전략의 도구로만 인식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자본주의 욕망에 따라 쉽게 용도와 역할이 변하는 모습과 창작자에게 부여하는 사회적 역할과 수혜자로서만 바라보는 시선들을 확인하며,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음을 살폈다. 또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발터 벤야민의 ‘폐허’ 개념을 통해 폐허에 설립된 아티스트 레지던시로 자본주의의 욕망으로서 발현된 도시재생의 이면까지 살펴보았다.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나아갈 방향으로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구성원으로 창작자를 바라봐야 하며, 제도에 앞서 창작자의 창작활동 그리고 창작자의 존재가 지속 가능한 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창작자에게 지역민을 고려한 사회적 참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우정과 환대를 바탕으로 한 신뢰감으로 상호지원적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현재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지역주민 참여, 도시재생, 지역활성화, 창작활동 지원, 국제 교류, 문화의 경제적 가치 확보등 여러 목표가 혼재되어 있다. 때문에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근원적 역할인 창작공간의 확충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흔적과 역사를 남기지 않고 기억을 상실한 공간이 될 경우 결국 아무것도 지속할 수 없는 공허한 공간이 되기에 폐허의 흔적에 대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이 고려된다면 운영주체와 창작자, 지역민 모두가 건강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자의 집이 되어주는, 도시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혹은 열린 자세로서 미술을 받아들이고 성숙한 미술 감상 및 향유의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되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조성을 위한 정책 세미나 아트팩토리 어떻게 할 것인가, https://sfac.or.kr/upload/archive/2010/01/08/014//20100108134933C05699_ORG.pdf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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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립 50주년 1973~2023, 2023
윤미애, 2011, 현대도시의 지형학과 벤야민의 도시읽기 – 발터 벤야민의 『파사주 프로젝트』에 대한 소론. 독일어문학, 19(1), 153-175.
박신의, 2013, 창작스튜디오의 역할 변화에 따른 정책 구도와 타당성. 문화정책논총, 27(2), 79-99.
정철현, 박윤조, 2011, 우리나라 공공미술정책을 위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의 적용. 사회과학연구, 50(2), 81-113.
이문석, 2024, 내 집과 너네 집 사이에서 ― 원룸레지던시를 운영하며 드는 소회들 (출처: 내 집과 너네 집 사이에서 ― 원룸레지던시를 운영하며 드는 소회들), http://semacoral.org/features/moonseokyi-oneroom-residency
월간미술, 2023, 레지던시의 역할과 의미, 그 방향에 대해여, https://monthlyart.com/portfolio-item/%EB%A0%88%EC%A7%80%EB%8D%98%EC%8B%9C%EC%9D%98-%EC%97%AD%ED%95%A0%EA%B3%BC-%EC%9D%98%EB%AF%B8-%EA%B7%B8-%EB%B0%A9%ED%96%A5%EC%97%90-%EB%8C%80%ED%95%98%EC%97%AC/
성다인, 2024, 창작자 여러분, 충분히 잘살고 있나요? 어떻게요?, 웹진비유, https://www.sfac.or.kr/literature/epi/D0000/epiView.do?epiSeq=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