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정강자에 대한 연구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기 작업인 실험미술, 행위 예술 집중되어 있고, 후기 작업에 대한 연구가 부족함을 확인하였다. 기존의 연구가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거부당했는 지를 살피거나, 정강자가 동인으로 활동한 집단 중심으로 살핀 연구들로 정강자의 초기 작업인 행위예술에주된 관심을 두고 있었다.본고에서는 초기 작업부터, 회화 작업과 에세이를 포함하여 정강자의 작업 전반을 살피며 ‘여성주의 관점’에서 정강자를 살펴보는 시도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앵포르멜에 대한 종식 이후 일종의 저항의식이 담긴 작업, 오지 여행을 떠나는 과정, 자화상, 자기 신체 변화를 기록한 투병일지까지 포함한다. 정강자의 작품을 여성성과 관계된 미학적 혹은 이미지 자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여성 입지에 비판적인 인식을 갖고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대항함과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성별 정체성을 인지하고, 여성 본질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여성미술1의 태도와 양식들을 다각적인 시선으로 살펴볼 것이다. 1990년대 미국 페미니즘 미술에 대한 지식 수입으로 여성주의 미술이 미국 사례 중심으로 집중되어 수용 및 전개된 점을 고려하여 프랑스 정신분석 여성주의 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2의 이론을 토대로 정강자의 작업 세계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여성성과 관계된 기호학적 혹은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한다. 마지막으로, 정강자가 자전적 글쓰기의 방식으로 텍스트 작업을 병행하였음을 함께 주목했다. 에세이에서 정강자는 고유의 욕망을 스스로 탐구하고 고백하며 직설적으로 표출한다. 억눌린 감정과 욕망을 마주하며 자기 자신을 해방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당시 숨은 욕망을 드러내는 도구로써 글쓰기는 자신의 존재를 직시할 수 있고 탈-검열화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정강자의 작업에서 여성주의 미술의 맥락에서 정치적인 동시에 미학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에 내포된 여성주의적 특징을 확인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경계, 애브젝트, 여성-어머니
여성의 ‘몸’은 남성과의 생물학적 차이가 사회적 차별로 연결되는 논리에 대한 저항으로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정강자의 작업 또한 자신의 몸인 즉, 여성의 몸이 중요한 재료로 작품 전면에 등장한다. 정강자의 작업은여성과 여성의 몸을 정치적 전략으로 재료화하여 침묵시키고 금기화 시킨 행위를 실행하고, 지배적 체계 바깥으로 추방된 ‘여성(자신)’의 부정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에,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론과 함께 해석할 여지
를 남겨둔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저서 『공포의 권력: 혐오의 에세이 (Pouvoirs de l’horreur: Essai surl’abjection)』에서 등장하는 개념인 애브젝트(abject)는 주체와 객채의 경계선에서 주체도 대상도 아닌 더럽고 천하며 역겨운 주제와 객체 사이에 놓인 것을 의미한다. 애브젝트는 동일성의 질서를 침해하기 때문에 불쾌감, 공포감, 혐오감을 유발한다. 반면에, 애브젝트를 자신의 경계를 위협하는 어떤 것으로 상정하고 이를 배척하여 동일성의 질서 내에서 안정된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정신적 혹은 심리적 작용을 애브젝시옹(abjection)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애브젝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주체의 주변에 남아있는다. 이때, 지칭하는 주체는 라캉이 주장한 아버지와의 관계에 기초하여 발달한 주체로, 때문에 애브젝트 개념에서 가장 먼저 분리되어야 할 존재는 어머니가 된다. 이에 따르면, 여성은 상징계 바깥에 존재하게 되며 크리스테바는 필연적으로 아이가 어머니의 몸을 상실시키는 아버지의 질서가 지배하는 상징계의 방해 요소인 ‘어머니-여성’은 애브젝트가 된다. 상상계의 범주에서 ‘어머니-여성’은 완전한 타자가 아니기에 자신과 타자의 경계에 대한 모호함을 가져온다. 이처럼 여성과 애브젝트는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크리스테바는 애브젝트가 예술과 만났을 때 이분법적인 시도를 거부하고 도리어 상징계에 파열을 주어 개념과 규범의 획일성을 해체하여 억압되었던 타자를 발견하고 그들의 차이를 밝혀낼 수 있다고 바라본다. 크리스테바의 주장처럼, 정강자의 작품이 주체와 객체의 경계 사이에서 어떻게 애브젝트가 되는 지, 불쾌감과 혐오감을 주는 애브젝트가 동일성의 질서에 어떤교란을 일으키는지, 전략이 된 애브젝트는 어떻게 목소리를 내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애브젝트 되기와 자전적 글쓰기

핑크빛 거대한 입술 속에 선글라스를 쓴 여성의 머리, 가정용 고무장갑, 유리 플라스크가 입술 안 치아에 담
겨 있다. <키스미> (도판 1)는 입술을 딱딱하고, 단순화하고, 거대하게 표현하여 기이함을 자아낸다. 부드럽고 섬세해야 할 혹은 삼켜버릴 수 있는 대상으로서 여성의 입술을 반대로 표현하여 남성이 만들어낸 이상적 경계를 적극적으로 침범하여 불만을 터트리고, 남성 시선의 대상이 된 질서를 거부한다. 남성중심적 질서를 해체하고자 하는 의도로 인해 크리스테바의 이론과 연관된 페미니즘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동시에 미학적으로 승화된 작품은 거부할 수 없는 매혹감을 선사한다. 정강자는 <키스미>에 대해 “우리는 사회,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있고, 그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쏠려 있다”며 “‘문제적’인 여성으로 치부되는 것이 너무 만연해 이러한 비난을 가시화하려고 노력했다”라고 설명하였다. 이를 통해 배제된 자의 자기주장이 타자의 영역에서 애브젝트로 제시되어 교란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도판 1. <키스미>, 1967, 나무, 플라스틱, 석고, 전선 등 , 200x120cm
이미지 출처: 웹진 ACC, 2024.12.14


<투명풍선과 누드>(도판 2)를 미술평론가 홍경한은 미술을 포함하여 사회 부조리 전반으로부터 탈출하여 여생해방의 갈망과 의지를 담은 작품으로 평가한다. <투명풍선과 누드>는 여성의 몸에 투명 풍선을 접촉시키고 그 몸이 투명한 레이어로 투과되어 보였다. 순결을 유지해야할 몸이 대중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배제되었던 여성의 몸은 실상 우리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 젠더 불균형적 재현 방식에서 여성의 성은 말할 수 없거나 표현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구조 아래 여성 자신의 욕망 또한 타자의 것으로 인지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투명풍선 누드>는 만들어진 이상적 여성의 몸이 아닌 실제 공간에 존재하는 속살을 가진 누구나의 몸으로 제시한 것이다. 정강자는 “그것은 내 몸을 재료,그것으로 쓴 것이지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다. 나 자신이 재료가 되는 이외의 그 어떤 재료도 그렇게 절실하게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인터뷰를 하였다. 또, 정강자는 “성별문제를 벗어나기 위해 오히려 더 내가 여성임을 드러냈다”라고 회고하였다. 불순한 전복에 대한 욕망을 품은 몸으로, 정강자의 몸을 재료로 전환했다.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직접 노출시키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몸이 되며, 저항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당시 <투명풍선 누드>를 많은 언론사가 선정적 이슈로 해석하였고, 특히 1968년 12월, 『주간경향』이 “만인의 주시 가운데 옷을 벗고 풍선을 터뜨려 그야말로 볼만한 쇼”를 제공한 공로로 ‘주간경향 10대 부문 대상’ 중 ‘발광상(發狂賞)’을 정강자에게 수여하는 등 여전히 문제로 바라보는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으며 가부장 체제에 순종적인 이미지로 재현되지 않는 몸은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낙인의 대상-애브젝트이 되었다.

도판 2. <투명풍선과 누드>, 해프닝 장면, 1968년 5월 30일, 세시봉에서
이미지 출처: 강국진 홈페이지

마지막으로, <여인의 샘>(도판 3)은 여성의 가슴 분 강조하여 제작하고, 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고정된 형태가 아닌, 유동적으로 계속해서 변화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떨어지는 물은 모성적이고 생명력 있는 유체로, 여성의 신체적 경험과 긴밀히 연결할 수 있다. 정강자의 작업 노트 “작품은 예쁜 여인의 몸을 상징적으로 만들고 두 유방 꼭지에선 물이 똑똑 계속 떨어지고, 그물은 밑에 둥글게 뚫린 곳에 떨어져 안쪽에 숨겨진 모터가 계속 물을 끌어 올려 주었다. 예쁜 색동 색깔로 엄격히 그어진 무늬에 칠을 하고.작품의 재료는 합성수지였다. 가볍고 견고한. 제목은 <여인의 샘>.”에서 알 수 있듯, 모유를 연상시키는 액체적이고 유랑적인 여성의 신체 구조를 재현하여 여성의 실존적 경험을 미학화하였다. 가슴과 둔부를 과장적으로 강조한 조각은 괴물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인식 불가능한 형체로 그로테스크함 감각을 자극하며 이상적인 여성의 몸을 해체하고 탈-고정화한다. 남성중심적 질서와 대비되는 미학적 특징으로 액체성을 강조하듯이 계속해서 가슴에서 물이 낙하하는 형상은 비고정적인 상태로 여성을 이성 중심적인 이분법(남성/여성)에서부터 벗어난다. 정강자는 <여인의 샘>을 ‘아름답고 강한, 여성의 끈질긴 삶’을 표현하였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정강자는 계속해서 여성적 정체성과 여성적 의식을 감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도판 3. <여인의 샘>과 정강자, 1970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2024.12.14

1988년 정강자가 쓴 『불꽃같은 환상세계』는 정강자의 초기 작업 시기 자신의 가난과 주변인들, 전시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작업 구상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자기 서사를 텍스트로 기록함으로써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부정당했던 박탈감과 그로 인한 분노를 글에서는 표출한 점이 특징적이다. 구체적으로, 1970년 8월 20일 소공동 국립공보관에서 개최된 <무체3전>은 공간 안에 관람객이 들어가면 사이렌이 자동으로 울리고 드라이아이스로 연기를 피워 관객의 시야를 제한하여 관람객을 당황하게 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개념적 전시로 실체 없이 흔적만 남는 전시이다. 하지만 국립공보관 측은 전시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전시를 강제 철거하였다. 당시 <무체전>이 철거 되었을 때의 심정을 『불꽃같은 환상세계』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다음날 미술관에 갔을 땐 나의 작품을 싹 쓸어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후였다. 누가 나의 작품을 보았는가? 누가 나의 작품을 밟았는가? 누가 나의 작품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누가 나의 작품을 이해하려고 했는가? 누가 나의 작품을 쓸어버렸는가? 나는 왜? 무엇 때문에 통곡하는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분노가 가득 섞인 질문은 독백의 형식을 띄지만, 사회가 가하는 억압에 대한 외침으로 느껴진다. 가부장적 질서에서 타의로 강요되던 암묵적 침묵을 깨고 온순해 야할 여성의 분노를 적극적으로 글쓰기로 발화시킨다. 자신을 끊임없이 기록한 정강자는 자신을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글쓰기를 선택하였다.
1960년대 후반 정강자의 작품은 억압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숭고와 광기 사이에서 존재하는 여성(자신)의 몸을 작품으로 내세웠다. 외부 사회로 표출되지 못하고 억압되고 분열되어 여성의 몸을 그대로 노출해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 경계와 규칙을 무시하는 것 – 애브젝시옹을 불러일으키는 부정하게 (동시에 마음을 홀리는 기묘함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가부장제 사회의 내부에 위치하면서 동일자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 내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크리스테바는 여성이 순종적인 이상적 이미지에 동일시되며 가부장적 문화는 남성적 설득력을 바탕으로 여성의 역할을 고정화하며 발전 가능성을 억압해 왔다. 이에 반대되는 여성의 모습인 “애브젝트 되기”-광년 되기, 괴물 되기,를 실천하여 여성성을 재전유하며, 정강자는 크리스테바가 목표로 삼은 여성(타자)의 차이를 제시하였다.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의 육체를 생생하게 느끼고 주장하며 여성에게 강요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글을 썼다. 다시 말해 주변화된 감정과 억압당한 심정을 담은 글쓰기를 해내고 이는 당시 한국의 보수적 범주화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되어 준다.

오지 여행과 내면으로의 여행

1980년대 중반 정강자는 세계 오지를 탐험하기 위한 여행을 결심하였으며 1987년부터 1992년까지 40여개국의 오지를 탐험했다. 1978년 싱가포르로 이주하여 바틱4 기법을 습득하고, 회화로 전향하였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회화의 소재를 탐색하였다. 낯선 타국에서의 경험은 순수한 욕망, 내면의 진실에 더 귀 기울였던 시기로 오지여행을 다녀온 정강자는 점차 환상과 꿈 그리고 현실의 경계에 있는 초현실주의적 화풍을 보이게 된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꿈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현실인 세계, 현실이면서 동시에 꿈인 세계”라고 평한다. 이는 현실에서의 고립감 혹은 박탈감을 회화에서 자연스럽게 내면의 욕망으로 표출하고, 불가사의하고, 신비로운 풍경을 묘사하며 또 하나의 세계를 상상하고 이로써 현실의 억압에서 자신을 해방하려는 시도로볼 수 있다. 오지 여행 시기 회화를 두 가지 갈래로 살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풍경을 직접 그리는 것, 두 번째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때, 타국의 문화와 사람을 타자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반영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회화 속에 구축하게 된다. 프랑스 페미니즘 사상가인 엘렌 식수는 타자를 포용할 수 있는 잠재력으로서 여성성을 설명하듯 정강자의 작업방식은 고정된 주체와 타자의 구도를 넘어서는 열린 관계를 형성하고, 타자성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표현하는 존재로서, 이성/육체의 이분법을 넘을 수 있게 된다.

정강자가 오지여행을 다닌 1980년대는 한국 미술계에서 의식화된 담론과 실천으로서 여성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시기이다. 1986년 ‘시월모임’의 <반에서 하나로>5라는 전시를 시작으로, 민족미술협회 소속의 여성작가들이 꾸린 여성미술연구회가 발족하는 등 ‘여성미술’6을 계급론에 입각한 민중미술의 하위 분류만으로 바라보는 주장이 있지만, 남성의 창조물보다 열등한 것으로 규정된 ‘여류미술’이라는 이름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여류 미술’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해당 시기는 이념적 결의나 사회적 발언 행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정강자는 개인인, 여성인 자신을 탐구하며 사사로운 개인의 삶과 경험, 사적 고백, 몸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었다. 개인적 성격을 띠는 담론-개인의 삶을 기록하거나, 사적인 고백을 하는 작업 등- 은 1990년대부터 한국 미술계에 포스트모니즘이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문민정부 이후로 자주 등장하였던 것을 고려하면, 정강자의 작업은 시대적으로 앞섰다고 볼 수 있다.

자화상과 여성, 야누스

정강자는 1960년대부터 말기까지 자화상을 지속적으로 그린다. 자화상을 통해 정강자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고립된 자신을 시각화하며, 이는 이미지에서 이상화된 자아의 붕괴 지점으로 표현되는 부분으로 나타난다. 가장 초기작인 <우울한 자화상>(도판 4)은 자기 주도적 시선으로 여성의 신체를 해체하며 자신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해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회 규범, 관습에 의해 해석되어 위협당하는 것을 사전에 배척하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이상적 자아에 대한 탐구가 오히려 내면의 불안과 분열된 자아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화실>(도판 5)은 자신의 현실인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여성(자신)의 모습을 미적 이상에서 빗겨내고 사회를 향한 비판적이고 도발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여성을 통제하려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도판 4. <우울한 자화상>, 1966, 종이에 수채, 50.5 x 34 cm. 이미지 출처: 아라리오 갤러리

도판 5. <화실>, 1977, 캔버스에 유채, 162×130.3cm. 이미지 출처: 아라리오 갤러리

<화실>에 대한 작가 노트로 “나의 젊은 날의 작업실은 어린 나의 아이들과 뒤엉켜 있었지만 그래도 그림은 그린다.”라고 쓰여 있듯이, 여성이 처해있는 현실의 폭력과 여성적 시련을 자신의 모습을 그려서 드러낸다. 크리스테바가 주요하게 분석한 애브젝트는 어머니인데, 어머니는 주체의 경계(자기와 타자의 구분)를 위협하는 존재로 상징된다. 주체는 어머니를 배제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하지만, 어머니는 주체의 내면에 흔적으로 남아 경계의 모호성을 유발한다. 따라서 주체가 상징계에 들어서기 위해 가장 먼저 배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한다. <명동> (도판 6)은 상반신을 노출하고, 화구박스를 맨 여성(자신)의 모습으로 정강자는 미술가와 여성, 그리고 몸을 동일시하며 강력한 힘을 가진 여성을 묘사한다. 남성 사회가 요구한 순종적인 모습의 여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불결하게 여겨지거나 배제되는 것들, 애브젝트로 여겨질 수 있다

도판 6. <명동>, 1973, 캔버스에 유채, 162×130.3cm 이미지 출처: 아라리오 갤러리

정강자의 중요한 모티프인 야누스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문의 신이다. 문을 지키기 위해 머리의 앞뒤에 얼
굴이 있어 두 얼굴을 가진 신이다. 정강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야누스에 투영하는데, 억압받는 자신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욕망을 펼치고 싶은 자신의 두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여성의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허무는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 그 경계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것이다. 여성의 내적 혼란과 고통을 현실 속에서 억눌려온 감정과 억압된 정체성의 해방을 위한 상징적 행위로 표현으로 ‘야누스’를 내적 분열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두 얼굴을 한 자신의 모습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을 표현하여 하나보다 무한히 많은 상태를 상징한다. 타자화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시선으로 경유하여 바라보며, 엘렌 식수의 말처럼 자신의 몸에 타자가 통과하고, 들어오고, 나가고, 머물 수 있도록 하여 이분법적 경계와 모더니즘을 반대한다. 여성 신체의 변주로 복수화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야누스를 모티프로 여성의 ‘몸’을 해체해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나 기능으로 환원되지 않도록 한다.자화상과 야누스 모티프는 공통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스스로를 변형하거나 해체하는 등 자신을 대상화, 재료화 함으로써 여성인 자신을 주체적 존재로 전환시킨다. 겉으로는 개인의 삶을 그린 듯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상징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고통을 담고 있다. 이로써 정강자의 개인적인 삶이 사회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뜻하게 된다. 자화상을 통해 개인적 이야기를 사회적, 역사적 실재와 밀접하게 바라볼 수 있고,자화상 그 자체로 사회와 역사의 기록이 될 수 있었다

투병과 애브젝트, 여성적 글쓰기

정강자는 2015년도 위암 판정을 받는다. 해당 시기 정강자는 질병과 육체의 붕괴를 담담하게 기록한다. 애브젝트 즉, 여성의 몸 그리고 유출된 피, 몸 밖으로 나온 내장, 오염물은 몸의 경계를 벗어나 불편함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자신(몸)과 타자(몸이 아닌 것)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하기 때문이다. <피의 향연>(도판 7)에서는 혈관과 표피 밑을 묘파하여 그로테스크함을 자극한다. 피는 시각적으로 강렬하면서도 본능적으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특성이 있다. 몸 밖으로 나와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애브젝트로 다가온다. 피는 또한 생명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암시하며 죽음의 징후로 다가온다.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동시에 함축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수술 12일째 울지마>(도판 8) 에서는 위암 수술 이후 신체에 가해지는 상처의 흔적을 그려내어 육체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체의 손상은 자신이 다치고 불완전하다는 인식을 불러일으켜 자신이 온전하지 않은 타자화 된 자아로 느껴지게 한다. 신체의 파괴와 변화가 곧 자아의 해체로 이어진다. 아프고 변화하는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경험은 죽음의 은유적 경험이면서도 자아의 경계를 확장 혹은 축소되는 체험으로 이어진다. 살의 취약함과 피, 내장, 해골, 뼈의 모습은 인간 존재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경계에 놓인 불안정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여 자아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판 7. <피의 향연>,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이미지 출처: 『죽다, 살다』

도판 8. <수술12일째 울지마>, 2015, 캔버스에 유채, 90×72.7cm. 이미지 출처: 『죽다, 살다』

정강자는 에세이 『죽다, 살다』에서 죽음과 망각에 관한 저항으로서 글쓰기를 한다. 투병 과정에서 자신의 몸과 자아가 취약성, 무력함을 마주하고 변화를 인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엘렌식수는 ‘에크리튀르 페미닌(écriture féminine)’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기 신체의 경험을 글로 옮기는 행위가 여성에게 해방적이며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의 말을 빌려, 일지 형식의 투병과정 기록은 ‘다층적인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자신의 신체와 직접적이고 내밀한 대화를 나누면서 몸의 감각과 내면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된 글은
영영 죽지 않고 전수되며 안-죽을 수도 있고, 여러번-죽을 수도 있다. 정강자의 초기작인 <우울한 자화상>과 처럼 『죽다, 살다』에 수록된 <자화상>(2015)도 자신을 해체하여 표현된 것이다. 몸이 애브젝트화되어 가는 경험을 하고, 이러한 신체의 파괴와 변화가 곧 자아의 해체로 이어진다. 아프고 변화된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경험은 죽음의 은유적 경험이면서도 자아의 경계를 확장하는 체험의 경험으로서 신체적, 사회적, 언어적 경계를 해체하고 교란시킨다.

결론

정강자는 이렇듯 초기부터 말기까지 자신(여성)의 몸을 내세우며 사회적 부조리에 대응하기 위한 누드 해프
닝을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몸의 내장, 장기, 피를 그리며 죽음의 과정까지 생의 전체를 작업으로 보여준다. 당시 1960년대 한국은 가부장적 구조 아래 여성은 남성에게 꿈이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남성이 주도한 문화에서 정강자가 여성성과 여성의 언어를 표출할 때마다 남성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해야 한다는 지점과 여성의 언어를 표출해야 한다는 내적인 혼란이 -정강자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강자의 작업을 여성주의적 맥락에서 읽을 수 있게 된다. 정강자의 작품은 애브젝트와 애브젝트-되기를 통해 여성주의 미술의 경계를 확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작품에서 엿볼 수 있듯이 정강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작품에 여성인 자신의 모습을 등장시킨다는 점과 단일한 매체가 아니라 실험적 형식을 고민하고, 자화상과 야누스적 모티프를 차용한 점에서 남성 작가들이 작품에서 등장시키는 여성의 모습이 아닌 분열적이거나 포용적인 여성 특유의 형식을 창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에서 특별히 주목한 점은 미술뿐만 아니라 글을 통해 억눌린 욕망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여성에게 금기된 언어를 발화함으로써 여성의 부재하는 목소리를 복원하고, 크리스테바의 관점에서 남성 중심적 상징질서가 여성의 주체성을 억압하며 초래한 내면의 혼란에 저항하는 도구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여성의 글쓰기는 오랫동안 금지되었고, 숨겨져야 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정강자의 글쓰기는 시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정강자는 본질적으로 애브젝트와 관계되는 정체성인인 여성으로, 여성의 몸으로 끊임없이 체계/체제, 질서 등을 균열을 가하는 작업을 해낸다. 남성 지배사회에서 애브젝트-되기를 통해 자기 파괴적 모습이 오히려 자기 파괴성을 거부하려는 시도로 이어지는 등 정강자의 작업이 애브젝트는 부정의 영역이 아니라 수행적 전략이 되었다. 이는 정강자의 작품을 사회적 억압에 대한 반발, 여성 주체성의 재구성, 그리고 가부장적 질서의 상징적 경계를 해체하려는 시도라는 다층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게 했다.

1.김현주는 「1980년대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에서 ‘여류미술’, ‘여성미술’, ‘여성주의 미술’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여류미술’이란 근대 이후 여성들이 제작한 미술을 주류 미술과 효과적으로 분리시키고 폄하하기 위해 사용되어 온 것인데, 당시 이 명칭은 여권 주장과 종종 혼돈을 야기하면서 생물학적 성과 무관하게 예술성을 추구하는 겸허한 여성작가들의 미술이란 의미로 더욱 자주 사용되었다. ‘여성미술’은 여성을 폄하하는 여류란 호칭을 거부하고, 서구적 발상인 ‘페미니스트 미술’ 또는 ‘여성주의 미술’에도 저항하기 위해 민중 계열 여성 미술가들이 대안으로 고안한 용어이다. ‘여성주의 미술’이란 여성적 의식이나 여성적 문화 차원의 미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1970년대 이후 서구의 여성주의 미술가들이 탐구한 젠더 차별적 문화에 대한 의식·여성적 감수성·여성성 등이 그 중심 의제를 형성한다.” 김현주, 「1980년대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 현대미술사연구 23(현대미술사학
회, 2008)

2.줄리아 크리스테바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로, 그녀의 저서 『공포의 권력: 혐오의 에세이 』에서 ‘애브젝트’와 ‘아브젝시옹’ 개념을 제시한다. 애브젝트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경계 밖에 놓인 것들을 가리킨다. 이는 전통적으로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불결하거나 오염된 요소들을 포함하며, 주체와 객체의 구분에서 경계 밖에 놓이는 것들을 의미한다. 애브젝시옹은 애브젝트에 대한 반응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인간이 이 ‘애브젝트’를 본능적으로 거부하거나 혐오하면서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는 심리적 반응을 의미한다. 애브젝시옹은 자기 인식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주체가 자신과 외부를 구분하려고 할 때 경험되는 불쾌함과 저항감이다.

3 여기서의 무체는 ‘무체주의(無體主義)’는 노자(老子) 사상의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부터 가져온 개념으로 물질적이거나 구체적인 형체에 얽매이지 않고, 무형(無形)과 무(無)의 본질을 추구하는 사상을 의미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道)는 형체가 없다”며, 무형과 무체의 상태가 본래의 진리를 나타낸다고 강조다. 이런 맥락에서 무체주의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4 바틱은 보존 염색 기법 중 하나로 밀랍 염색의 독특한 기하학적인 무늬나 천의 명칭이다.

5 1986년에 개최된 시월 모임의 제 2회 전시이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여성주의 미술 운동을 촉발시킨 전시로 평가한다. 시월모임은 1985년에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이 결성한 미술 단체로 관훈미술관에서 창립전을 개최했다.

6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 ‘여성미술’은 운동의 주체들이 ‘페미니즘 미술’ 대신 의식적으로 채택한 이름이다. 오진경, 「1980년대 한국 여성미술에 대한 여성주의적 성찰」, 현대미술사연구 12(2000).